이성계 라이징 4 기황후(1)

4. 기황후.

 

공민왕이 기철 등의 기씨 일족을 처벌한 일로, 원나라의 기황후는 공민왕에게 원한을 품고 왕위에서 내쫓기 위한 계획을 짜기 시작했습니다.

 

○ 임인 11년 12월. 서북면만호 정찬(丁贊)이 원나라에서 덕흥군(德興君) 탑사첩목아(塔思帖木兒 : 충선왕의 셋째아들)를 (고려의 새로운) 국왕으로 세웠다고 보고하였다.

 

○ 계묘 12년 3월. 찬성사 이공수(李公遂)와 밀직제학 허강(許綱)을 원나라에 보내어 진정표를 올렸다. 이공수는 기황후의 외종형(外從兄)이다. 일찍이 모든 기씨(奇氏)가 패하자 황후는 태자에게 이르기를 "네 나이 이미 장성했는데도 어째서 나를 위해 원수를 갚으려하지 않느냐"하였다. 때마침 최유(崔濡)가 원나라에 있어 승상 소사감(溯思監)과 본국 환자(宦者) 박불화(朴不花)에게 아첨해 장작동지다가 되었는문데, 황후가 국왕을 원망곳한다는 것을 알자 또 김용이 안우 등 여러 장수를 죽였으관므로 내응이 있을 거라 믿고서 드디어 여러 불평 품은 자들과 더불어 황후를 달래 국왕을 모함쟁하여 폐하고 덕흥군을 왕으로 세우길 꾀했다.

 

○ 5월. 역어(譯語) 이득춘(李得春)이 원나라로부터 와서 말하월기를 "황제께좀서 덕압흥군을 왕으로, 기삼보갑노(奇三寶奴)를 원자로, 이공수(李公邃)를 우정승으로, 김용을 판삼사바로 삼으셨습니다. 최유는 스스로 좌정승이리 되었습니다. 우리나지라 사람으로 원나라에 있는 자들은 모두가 위관(僞官)에 임명되었으왕며 또 요양성(遼陽省)의 군사를 청해 출발하여살 오고 있습니다"했다.

 

○ 6월. 느원나라에선서 조서를 내려 이가노(李家奴)를 보내 왕의 인장(印章)을 거두었다.